업무 위키(문서를 서로 연결해 쌓아 두는 지식 창고)를 더 똑똑하게 만들려고 조사를 시작했는데, 결론은 "갈아엎지 마세요"였습니다. 위키를 죽이는 건 기능 부족이 아니라 관리에 지친 사람이었습니다.
이 글 3줄 요약
- 혼자 쓰는 수백에서 수천 개 규모의 위키는 벡터DB(뜻이 비슷한 글을 찾아 주는 저장소) 없이 폴더와 글자 검색만으로 충분했습니다.
- 위키가 버려지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이 고도화를 유지하다 지치는 것이라, 정리 노동은 AI에게 넘기고 저장은 던지기만 하면 되게 했습니다.
- 원본 층, AI 정리 층, 규칙 파일의 3층으로 나누고 자동 구역 표시를 넣으면 AI가 내 글을 망칠 걱정이 크게 줄어듭니다.
위키를 갈아엎으려다 멈췄습니다
저는 업무 기록을 전부 위키에 모아 둡니다. 통화 메모, 미팅 정리, 자동화를 만들다 막혔던 기록까지 들어갑니다. 형식은 마크다운(기호 몇 개로 제목과 목록을 표시하는 단순한 글 형식) 파일이고, 그냥 폴더에 쌓여 있습니다.
노트가 늘어나니 욕심이 생겼습니다. 요즘 자주 들리는 벡터DB를 붙이고, RAG(AI가 답하기 전에 내 자료를 먼저 찾아 읽게 하는 방식)로 제대로 다시 짜야 하나 싶었습니다. 글을 숫자 좌표로 바꿔 저장해 두면 단어가 달라도 뜻이 비슷한 문서를 찾아 준다고 하니, 그래야 제대로 된 AI 위키가 될 것 같았습니다.
바로 손대지 않고 조사부터 시켰습니다. AI 넷에게 영역을 하나씩 나눠 줬습니다. 공개 코드 저장소, 커뮤니티와 영상, AI 연동 기술, 메모 방법론입니다. 서로 결과를 모르는 상태로 돌린 다음, 넷이 똑같이 가리키는 결론만 믿기로 했습니다.
돌아온 결론은 제 기대와 정반대였습니다.
틀어질 뻔한 지점은 고도화 자체였습니다
조사 결과에서 가장 아팠던 대목이 있습니다. 혼자 쓰는 위키가 버려지는 가장 흔한 이유는, 사람이 고도화를 유지하려다 지쳐서라고 합니다. 손으로 관리하는 메모 시스템은 일주일쯤 간다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돌아보니 저도 그 길 위에 있었습니다.
- 손으로 쓴 참고 노트가 열 몇 개로 불어났는데 목차가 없었습니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는 제 기억에 기대고 있었습니다.
- AI에게 기록을 맡기면 파일을 통째로 다시 쓰는 방식이었습니다. 통째로 덮어쓰면 AI가 없던 내용을 지어내 끼워 넣을 위험이 있습니다.
- AI가 지켜야 할 규칙이 어디에도 글로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매번 제가 프롬프트(AI에게 주는 지시문)로 다시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벡터DB까지 얹었다면 관리할 것이 하나 더 늘었을 겁니다. 문서를 고칠 때마다 다시 변환해야 하고, 변환이 밀리면 옛 내용으로 답하고, 보안도 따로 챙겨야 합니다. 지칠 이유를 제 손으로 하나 더 만드는 셈이었습니다.
벡터DB가 필요 없었던 이유
조사에서 확인한 근거를 출처 수준과 함께 적습니다.
- 한 독립 벤치마크(코드 검색 기준)에서 글자 그대로 찾는 검색이 약 68%, 벡터 검색이 약 60%로 나왔습니다. 인기 블로그 수준의 출처라 참고로만 봅니다.
- 널리 쓰이는 코딩 AI 도구를 만든 회사가 자사 제품에서 벡터DB를 걷어내고, AI가 직접 검색해서 읽는 방식으로 바꿨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더 단순하고 낡은 정보 문제와 보안 문제가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잘 정리된 위키는 문서를 잘게 쪼개 넣는 과정에서 오히려 맥락이 끊긴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판정은 단순했습니다. 노트가 수백에서 수천 개인 1인 위키라면 전문검색(문서 전체에서 글자 그대로 찾는 검색)과 AI가 파일을 직접 읽는 방식이면 됩니다. 벡터 방식은 문서가 수만 개를 넘어갈 때에야 본전을 찾는다는 결론이었습니다. 혼자 쓰는 규모에서는 구축과 유지에 손이 거의 가지 않는 쪽을 고르는 편이 맞았습니다.
예외도 있습니다. PDF나 이미지가 많이 섞여 있거나, 단어는 다른데 뜻이 같은 질문을 자주 던진다면 그 부분에만 벡터 검색을 얹으면 됩니다. 통째로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갈아엎는 대신 3층으로 나눴습니다
조사는 뜻밖에도 제 기존 설계를 확인해 줬습니다. 분류 없이 던져 넣는 받은 편지함 폴더, 원본을 따로 복사해 두는 구조, 자동 정리, 백업까지 기본 뼈대는 이미 정석에 가까웠습니다. 빠진 것은 규칙을 적은 문서였습니다.
AI 위키 쪽에서 널리 쓰이는 구조는 3층 분리입니다.
- 원본 층: 통화 메모, 회의록, 내보낸 파일처럼 손대면 안 되는 자료입니다. AI는 읽기만 합니다.
- AI 정리 층: 요약, 주제별 정리 문서, 문서 사이 링크를 AI가 만들고 다시 씁니다. 정리는 여기서만 일어납니다.
- 규칙 파일: 폴더 구조와 문서 양식, 작업 순서를 적은 문서 한 장입니다. AI가 평범한 챗봇처럼 굴지, 규율 있는 관리자처럼 굴지를 가릅니다.
보강할 곳은 다섯 군데로 추렸고, 맨 위에 올린 것이 이 규칙 파일입니다. 아래 내용을 복사해 폴더 맨 위에 두고, AI에게 일을 시킬 때마다 먼저 읽히면 됩니다.
이 폴더는 업무 위키입니다. 아래 규칙을 지켜 주세요.
1. 원본 폴더는 읽기만 합니다. 수정, 삭제, 이름 변경을 하지 않습니다.
2. 정리 결과는 위키 폴더에만 씁니다.
3. 문서 안의 [자동정리 시작]과 [자동정리 끝] 사이만 다시 씁니다. 그 바깥은 사람이 쓴 글이므로 건드리지 않습니다.
4. 같은 작업을 다시 실행해도 내용이 중복으로 쌓이지 않게 합니다.
5. 모든 문서 맨 위에 종류, 제목, 날짜, 태그, 상태를 같은 양식으로 적습니다.
6. 새 폴더를 만들지 않습니다. 묶을 문서가 생기면 목차 노트에 링크를 추가합니다.
세 번째 줄이 핵심입니다. 자동 구역 표시를 넣어 두면 AI는 그 사이만 새로 쓰고, 제가 직접 적은 메모는 그대로 남습니다. 제 위키 첫 화면 문서에는 이미 쓰고 있던 방식입니다. 네 번째 줄은 멱등(같은 작업을 여러 번 돌려도 결과가 같은 성질)이라고 부르는데, 자동 실행이 실수로 두 번 돌아도 같은 요약이 겹쳐 쌓이지 않게 막아 줍니다. 기록은 매일 추가만 하고, 오래된 내용은 주기적으로 가지치기하는 방식도 함께 권장됐습니다.
나머지 보강 중 옮겨 쓸 만한 것은 문서 머리말 통일과 목차 노트입니다. 문서 맨 위에 종류, 제목, 날짜, 태그, 상태를 같은 순서로 적어 두면 검색에 잘 걸리고 AI도 문서를 찾기 쉬워집니다. 목차 노트는 주제별로 관련 문서 링크를 모아 둔 문서입니다. 검색을 빠르게 만드는 요소 가운데 효과가 가장 큰 것이 목차 노트였고, 가장 약한 것이 태그였습니다. 깊은 폴더와 마구 붙인 태그는 검색을 느리게 만드는 주범으로 꼽혔습니다.
폴더 하나를 AI 여럿이 같이 쓸 때 생기는 문제는 같은 서랍을 AI 둘에게 맡겼다가 꼬인 기록에 따로 적어 두었습니다.
현장 인사이트
현장에서는 통화 한 통, 미팅 한 번을 분류할 5초가 없습니다. 위키의 핵심은 완벽한 분류가 아니라, 던져 놓기만 하면 AI가 알아서 정리해 주는 구조입니다.
식당이든 사무실이든 같습니다. 저장하는 순간에 어느 폴더에 넣을지를 묻는 시스템은 바쁜 날 바로 버려집니다. 조사에서도 저장까지 3클릭을 넘기면 포기하게 된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사람은 무엇을 남길지와 무엇을 물을지만 책임지고, 정리 노동은 AI에게 넘기는 쪽이 오래 갑니다.
오늘 바로 해 볼 것
준비물은 폴더 하나와 AI 도구 하나입니다. 옵시디언 같은 메모 앱을 써도 되고, 그냥 컴퓨터 폴더여도 됩니다.
- 상위 폴더를 만듭니다. 받은 편지함, 원본, 위키, 보관 정도면 됩니다. 4~5개를 넘기지 않습니다.
- 위의 규칙 파일을 복사해 맨 위에 둡니다.
- 오늘 생긴 메모는 분류하지 말고 받은 편지함에 넣습니다.
- 하루 일을 마칠 때 아래 프롬프트로 정리를 시킵니다.
규칙 파일을 먼저 읽어 주세요.
받은 편지함 폴더에서 아직 정리하지 않은 메모만 골라 아래 작업을 해 주세요.
- 메모마다 핵심을 세 줄 이내로 요약합니다.
- 관련 있는 목차 노트를 찾아 자동정리 구역에 링크를 추가합니다.
- 원본 메모는 고치지 말고 원본 폴더로 옮기기만 합니다.
- 끝나면 무엇을 어디에 추가했는지 목록으로 보고합니다.
- 확실하지 않은 내용에는 추정이라고 표시합니다.
AI에게 조사를 시킬 때는 출처 등급도 함께 요구해 보세요. 어떤 주장이 공식 발표에서 왔는지, 커뮤니티 글에서 왔는지가 한눈에 갈립니다.
각 근거 옆에 출처 등급을 붙여 주세요.
A 공식 발표나 검증된 논문, B 공식 문서, C 인기 블로그, D 개인 블로그, E 커뮤니티 글.
D와 E만 있는 주장은 결론에 넣지 말고 따로 모아 주세요.
마지막으로 점검표입니다.
- 저장할 때 분류를 묻는 단계가 없습니까
- 원본 폴더를 AI가 고칠 수 없게 되어 있습니까
- 자동 구역 표시 바깥의 내 글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까
- 같은 정리를 두 번 돌려도 내용이 겹치지 않습니까
- 폴더 대신 목차 노트가 늘어나고 있습니까
위키는 더 똑똑하게 만들기 전에 덜 귀찮게 만드는 일이 먼저였습니다. 매장이나 회사 기록을 어떻게 쌓아야 할지 막막하시면 편하게 물어봐 주세요.